삼진어묵 ― 처음으로 돌아가 끝까지
부산 영도구 봉래동의 ‘삼진어묵’ 공장 앞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1953년 겨울, 창업자 박재덕은 “어묵 한 장으로도 사람 배를 따뜻하게 채우고 싶다”는 포부를 품었다. 전후(戰後) 식량난 속에서 생선과 밀가루를 섞어 반죽을 치대던 맨손은, 70 년이 지난 지금 연매출 1 천억 원·해외 12 개국 수출의 글로벌 브랜드를 일궈 냈다. 그 여정은 악보의 Da Capo al Fine처럼 “처음으로 돌아가 끝까지”를 반복하며 확장된 서사다.
Da Capo │ 1953 ~ 1990 ― 4 평 포장마차, 반죽 한 통으로 시작
- 1953년 6·25 휴전 직후, 국제시장 6공구 골목. 새벽 수협 경매에서 남은 잡어를 건져 올려 손수 손질한다. 생선 비린내를 지우려고 쑥과 마늘을 다져 넣었고, 맷돌에서 갈린 살점을 나무통에 넣어 대나무 주걱으로 2 시간씩 8자(字) 모양으로 쳐서 탄력을 만들었다.
- 하루 생산량 200 장—‘삼진(三進)’이라는 상호는 “새벽·점심·밤 세 번 반죽을 새로 한다”는 뜻. “갓 튀긴 어묵은 밥 없이도 한 끼”라는 평판이 국제시장에서 퍼지며 1965년에는 일매출 3 만원, 당시 쌀 25 가마에 해당하는 수입을 올렸다.
- 1970년~80년대 부산 피난민들이 서울·대구로 흩어지며 “부산 어묵” 입소문이 전국으로 번졌다. 그러나 레시피는 여전히 수작업·맨손 반죽. 주 7일 새벽 4시에 불을 지피지 않으면 생산이 멈췄다. “완주하기 전엔 쉬지 않는다”는 창업주의 철칙이 뿌리내린 시기다.
“처음 반죽했던 손맛을 지키려면, 기계 대신 손을 더 단단히 써야 했다.”
— 2대 대표 박문수(회고 인터뷰, 1993)
Intermezzo │ 1991 ~ 2010 ― 중국산 파도, 전통의 벽과 맞서다
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직후, 인건비가 급등하고 대형마트에 중국산 냉동 어묵이 쏟아졌다. 삼진어묵도 1998년, 첫 월 적자를 기록한다. “전통 간판만으로는 살 수 없다”—3대 대표 박용준이 선택한 카드는 ‘원가 구조 혁신’이었다.
1) 재료・공정 혁신
- 어육 비중 54 % → 72 %로 상향, 대신 불필요한 소금·설탕·MSG 제거.
- 80 여 종이던 SKU(품목)를 30 종으로 압축, 회전율을 높여 재고 ↓.
- 부산 자갈치 1급 어물상과 직거래 체결 → 원가 20 % 절감.
2) 브랜드 리포지셔닝
- 2003년 CI 교체: 붓펜으로 쓴 ‘三進’ 대신 영문 ‘Samjin Fish Cake’ 병기, 파란색 파도 라인 삽입.
- 패키지 디자인을 종이 책자 느낌으로 바꿔 “문학적 온기” 부여.
- 2007년, 롯데·현대·신세계 백화점 ‘노포 팝업존’에 입점해 하루 3회 어묵 맛보기 공연(튀김 Live Show)으로 SNS 바이럴 유도.
3) 위기의 끝, 터닝포인트
- 2005년 115 억 → 2009년 78 억으로 떨어졌던 매출이 2010년 170 억으로 급반등.
- 핵심은 “전통을 공장에서 재현”하기보다 “전통은 체험, 대량은 HMR”로 이원화한 전략.
- 부산 본점(영도)을 체험형 매장으로 리뉴얼—마감 1시간 전 ‘어묵 클래스’(1인 25 00원)를 열어 하루 48명 정원을 꾸준히 채웠다.
Al Fine │ 2011 ~ 현재 ― 밀키트·카페형 매장·글로벌 확장
2013년 영도 본점을 ‘어묵 문화 공간’으로 리뉴얼한 날, 20대 관광객이 줄을 서서 어묵빵+아메리카노 세트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. “노포가 힙해졌다”는 해시태그와 함께 방문객이 1년 만에 10배로·매출은 4배(310 억)로 뛰었다.
1) HMR·밀키트 대전
- 2016년 ‘어묵탕 밀키트’ 홈쇼핑 10분 완판 — 동결건조 육수·채소·어묵을 ‘3단 팩’으로 분리 포장.
- 2020년 코로나 봉쇄기엔 쿠팡·네이버 스마트스토어로 D2C(Direct to Consumer) 전환, 온라인 매출 비중이 35 %를 돌파.
- 2024년 ‘삼진어묵 X 배달민족’ 실온 밀키트 → 수도권 30분 퀵커머스 테스트 성공.
2) 공간 브랜딩
- 카페형 매장: 벽면 오선(五線) 그래픽 + 화이트·골드 톤 조명 → “어묵=브런치” 이미지 혁신.
- 스토어 인 스토어: 2022년 스타벅스 부산 해운대점 내부에 ‘Fish Cake Bar’ 팝업, 월평균 1 만 컵 판매.
3) 수출 & ESG
- HACCP 자동화 공장(2019) 준공 후 미국·호주·싱가포르 코스트코 입점, 2024 해외 매출 270 억.
- 2025년 친환경 PLA 포장·어묵 부산물 재활용 사료 사업 → ESG 보고서 첫 발간.
- 목표: 2027년 코셔·할랄 인증 + 북미 생산 법인 설립, 매출 2 천억.
“양손으로 반죽하던 순환 리듬을 잃지 않고, 글로벌 트랙 끝까지 뛰겠다.”
— 3대 대표 박용준(2025 기자간담회)
Encore │ 다음 악장
삼진어묵의 70년은 전통(손맛) ↔ 혁신(밀키트·체험) ↔ 확장(수출·ESG) 순환 루프다. 브랜드와 소비자가 “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끝까지” 맛보고 즐기며 다음 트랙을 기대하도록 하는 구조—그들이 해외 식탁에서 또 한 번 ‘부산 어묵’ 타령을 울려 퍼뜨릴 날이 머지않았다.
참고·출처
- 부산일보, 「국제시장의 어묵집, 삼진수산 3대를 잇다」(2011-05-03)
- 머니투데이, 「삼진어묵, 전통 간판 달고 매출 5배 성장」(2017-10-24)
- KOTRA 수출지원센터, 「2024 식품 수출 통계」(2025-02)